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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Fin

투자, 그 시지프스의 신화

푼푼금융 에세이스트2026.11.01

투자, 그 시지프스의 신화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저렇게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짜서 자산 배분을 해도, 그런 순간들이 꼭 닥쳐온다. 말 그대로 현타가 오는 순간들. 가장 최근의 예를 들자면 코로나19로 인해 닥쳤던 폭락 장세. 그런 순간이 오면 3년,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쌓아온 수익이 한 순간에 날아가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원점이면 괜찮은데 아예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된 느낌이다. 기껏 산 정상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저 밑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주식 시장이 한창 폭락할 때 인터넷에 떠돌던 짤이 하나 있다. 모 증권사에서 개최한, 약 1500명 가까운 이들이 참가한 모의투자대회의 순위표였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다. 그의 순위는 1500명 중 50위. 그는 아무런 매매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 만으로도 50위가 되었다. 그냥 참여 신청을 하고서 까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동성 강한 시장을 바라보며 매매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타이밍을 지켜본 인내심 강한 투자자라면? 후자라면 그는 50위를 차지할 만한 자격이 있는 투자자일테다.

10년에 한 번, 20년에 한 번씩 닥치는 금융의 위기는 기존의 논리들을 다 틀어버린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알고리즘들은 기본적으로 자산 간의 상관 관계를 계산하고, 상관 관계가 다른 자산들끼리 모아서 변동성을 줄이면서도 수익을 내는 것이 그 기반이다. 그러나 시장에 큰 위기가 닥치면 그 모든 상관 관계들이 다 틀어지면서, 기존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이 함께 폭락하고, 그 어디에도 안전하게 나의 돈을 모아둘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자료를 읽고, 서로가 무슨 말을 할지 추측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의 전망은 늘 적당히 맞을 거에요. 그리고 거의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대개 비슷하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지만, 종종 그 가정 자체가 뒤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그 패러다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해서 그런 순간들은 오고야 만다. 그냥 시장자체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승자가 될 수 있는 순간들. 매매를 항상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절이 혹독할 때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승자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때로는 먹구름이 잔뜩 끼인 것을 알면서도 그 광기 속에서 조금이나마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티는 경우가 많다. 거시적인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당할 때 당하더라도, 알고는 당해야 한다. 그리고 혹 우리가 욕심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하나 확실한 것, 사이클

위기의 순간들을 마주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투자의 세계에서 단 하나 확실하지만, 또 동시에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순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옛 선인들이라면 그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달은 차면, 이지러진다.”

시장에는 명백하게 일종의 사이클이 있다. 문제는 그런 사이클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우리가 지금 사이클의 어느 쯤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건 참 어렵다는 점이다. 거시적인 경제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그 거시 경제적인 예측을 맞추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경제학은 물리학이 아니고, 결국 인간의 행동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현상들이기에 여기에는 정확한 법칙 같은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발판이 어느 즈음인지 항상 고민하며 한 발짝씩 내디딜 수 밖에 없다.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경기순환 주기의 개념은 참으로 깔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위아래의 등락폭이 저렇게 대칭적이지 않다. 또 확장국면과 수축국면의 길이가 똑같지도 않다. 각각의 국면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사실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포트폴리오 이론에서 우리는 결국 시장 리스크에는 노출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시장 리스크에 노출하더라도 자산군 사이의 상관 관계를 따져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면 적절히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리밸런싱을 할 때, 저런 경기 순환의 사이클에 대해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는 것은 필요하다. 때로는 위험 자산군의 비중을 줄이는, 혹은 현금 비중을 최대한 늘리며 리스크 자체를 최대한 회피해야만 하는 순간(Risk Off)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의 시작은, 항상 부채에서 시작된다

경제의 사이틀은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재고의 순환, 또 누군가는 설비 투자의 순환, 또 기술혁신의 순환 등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금융의 관점에서, ‘돈’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그 모든 사이클은 시중에 돈이 얼마나 풀려 있는가, 즉 ‘유동성’의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다.

돈이라고 표현하지만, 결국은 시중에 얼마나 많은 구매력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구매력이 차고 넘치면 투자를 하든, 소비를 하든 경제는 잘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이 구매력이라는 건 결국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시장의 유동성은 결국 (1)중앙은행의 찍어내는 화폐의 양 (2)민간 시장의 신용 창출 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시장에 유통되는 유동성의 대부분은 (2)의 비중이 더 크다. 해서 시장의 출렁임을 일으키는 건 결국 시중에 깔려 있는 신용의 양이다. 금융 위기 때마다 ‘신용 경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이유는 심플하다.

종종 간과하지만 신용은 그 자체로 ‘돈’은 아니다. 신용은 애초에 돈이 아니었다. 그냥 약속이다. “언제까지 돈을 주겠다.”라는 약속. 경제가 나빠지면 이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일들이 하나 둘 벌어진다. 누군가에게 받을 돈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짰는데, 그 돈을 못 받게 된다면? 그 돈은 애초에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돈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실 신용이다. 신용은 호황기에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불황기에는 자취를 감춘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로 가계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사실상 '나중에 돈을 내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손님과 가게 주인은 신용자산 credit asset과 신용 부채 credit liability를 생산해낸다. 그렇다면 돈은 어디에서 가져와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신용이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신용이 사라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만일 가게 주인이 의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손님이 신용카드 회사에 대금을 지급하고 신용카드 회사가 주인에게 돈을 내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면, 가게 주인에게 신용자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신용은 어딘가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해버린다.” 레이달리오 <레이달리오의 금융 위기 탬플릿>

그렇다. 신용은 그렇게 ‘증발해버린다.’

시장 사이클에 따라 시중의 구매력(유동성)을 구성하는 비중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도식적으로 그려보자면 아래와 비슷하다.

경기 상승 : 사람들이 빚을 내어서 소비하거나 투자를 한다. 자산 가격이 서서히 오른다.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더 많은 빚을 내어서 투자에 나선다.

경기 하락 : 레버리지가 과도해지면서 더 이상 신용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제 하나 둘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기 시작한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채무를 갚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시중의 풀려 있는 신용이 현금화되리라는 기대가 옅어진다.

그리고 저런 사이클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에서 이렇듯 반복되는 사이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꼬집기도 했다.

"도취감에 기여하는 것은 우리 시대나 과거에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두 가지 추가적인 요소들이다. 첫 번째 요소는 금융기억의 극단적인 단기성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계의 재앙은 금방 잊힌다. 더 나아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똑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종종 젊고 늘 확신에 차 있는 신세대는 이 상황을 금융계와 더 크게는 경제계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발견인 양 생각한다. 금융계처럼 역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적은 분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놀라운 기적을 평가할 통찰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원시적 피난처로 치부된다. "

때로는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제일 큰 투자다

거시 경제의 사이클을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맞추기는 힘들다. 사실 월스트리의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도 허구헌날 증시가 다시 상승할 예정이니 하강의 초입이니 하며 서로 엇갈리는 판인데 두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동안 본인의 투자 성과가 좋지 않다면, 그냥 투자를 쉬던가 안전 자산으로 갈아타서 기다리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차도 쉽지 않다. 왜? 우리는 항상 마음 속으로는 내가 산 주식은 어떻게든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사지도 않았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최근 5년간의 주식 투자 수익을 살펴봤다. 2016년~2018년 2년간은 수익이 컸다. 어떤종목은 별 생각없이 샀는데 갑자기 한달새 두배가 오르는 일도 있었다. 스스로 뭔가 신기가 있는지 알았다. 그렇게 벌어둔 걸 2018년 하반기부터 야금야금 말아먹다가 2019년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2020년 초에는 폭망을 했다.

그리고 나서 코스피 지수 차트를 봤다.

그렇다. 내가 잘해서 돈을 번 게 아니었다. 2018년 초반까지는 그냥 쭉쭉 오르는 시장이었다. 뭘 사면 그대로 오르니까 심리적으로 흔들릴 일도 드물고, 그러니 들고 가다가 익절을 하면 되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장이 좋아서였던 거다. 시장이 빠지거나 횡보하는 동안에는 계속 털렸다. 돈을 못 벌면, 그냥 ‘내가 놀아서는 안 될 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 그게 안 되는 거다. 왠지 내가 산 주식만은 오를 거 같고, 나는 왠지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을 거 같은 환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거대한 자본과 앞선 정보, 첨단화된 매매시스템을 갖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나 기관들에 대항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개인 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 마음대로 투자를 해도 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프로페셔널들은 시장이 좋던 나쁘던 매일매일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또 그들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회사일이니까 이런저런 각종 규제와 매뉴얼이 있다. 매매를 하지 않더라도 항상 시장에 몸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다. 시장이 아무리 하락장이라도 매매해야 하고, 시장이 아무리 고점인 거 같아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폭풍우가 오더라도 그들은 배를 띄우고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시장의 블랙 스완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야 월급이 나오니까.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그냥 장이 안 좋다 싶으면 쉬어도 된다. 봐서 물 반 고기반일 때만 하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저점에서 잡고 싶다는 욕망.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시장의 기회는 언제나 또 열리게 가오게 마련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휩쓸려 가지 않는 것이다.

주식매매를 하는데, 돈을 계속 잃고 있는가? 그럼 일단 쉬어라. 매일 매매를 하는 것보다 10년에 한 번 샀다가 한 번 파는 사람이 더 큰 수익을 볼 수도 있는 게 시장이다. 언젠가 복싱을 배우러간 적이 있다. 초심자답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샌드백을 치고 있는 나에게 관장님이 와서 한 마디 툭 던진다. “네가 세게 때린다고, 맞는 놈이 세게 맞아주는 거 아이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매매한다고 해서 시장이란 녀석이 나에게 수익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하워드 막스의 말처럼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없는 기회가 생기지는 않는다”. 털리면 쉬자. 차라리 그게 정신 건강에 좋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이 글은 정보 제공용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와 제도는 작성 시점 기준이고, 투자 판단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용약관

푼푼금융 에세이스트

금리·물가·산업의 변화를 살피고, 제 관점에서 시장과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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