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얼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얼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돈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까 드는 첫 번째 난점이 있었다. 도대체 돈 공부의 ‘코어’는 무엇일까? 몸이라는 녀석은 구글에 ‘코어’만 검색해도 무슨무슨 근육이 어쩌고 나오는데, 돈과 투자에 있어서는 무엇이 코어가 될까.
사실 경제 기사를 아무리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막상 읽어도 그때는 이해한 거 같은데 돌아서면 끝이었다. 이런저런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를 대할 때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나의 무지가 지독히도 근본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풀어야 하는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대체 무얼 모르는가?”
무지(無知)의 지도
그렇다. 내 앞에 닥친 건 저 질문으로 시작되는 절대적 무식함의 심연(?)이었다.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뭘 모를 때는 한 가지 밖에 없다. 일단 뭐가 되었든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최대한 찾아서 한번 나열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어떤 기준점을 부여해 그룹핑을 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정답을 찾는 건 두번째 문제다. 그렇게 나열하기 위해서 찾아보고 그걸 범주화하기 위해서 노력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무엇인지 체크해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지도를 만들어본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경제나 금융과 관련된 정보들은 사실 차고 넘친다. 경제지와 경제방송, 각종 도서, 그리고 최근에는 각종 유튜버까지. 하지만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게 곧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 뉴스를 많이 본다고 해서 경제를 잘 알게 되지도, 주식 방송을 많이 본다고 해서 주식을 잘하게 되지도 않는다. 주식 호가창을 10년쨰 쳐다 보았다고 해서 저절로 기술적 분석에 도가 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경제, 금융 그리고 돈과 관련된 공부들은 어떻게 나눠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일종의 동심원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편적이면서도 잘 변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구체적이면서 시장의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에 이르는 지식의 층위 같은 것들. 지나치게 보편적이라서 당장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고민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과, 응용의 단계에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이라는 측면에서 구분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보니 대충 아래와 같았다.
STRUCTURE의 단계는 경제 구조나 금리에 대한 이론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시장의 플레이어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론을 가지고 움직이는 가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들을 다루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수요-공급 곡선에서부터 시작되는 일반 경제학 이론, 경제에 인간의 심리를 접목한 행동경제학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을 있다. 동시에 화폐 자체가 가지는 의미, 현금을 넘어 신용들을 포함한 통화량의 변화가 시장과 경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통화론 같은 것들도 포함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ASSET의 단계는 자산들의 특징과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투자하는가에 대한 지식들이다. 투자를 위한 일종의 도구들의 단계. 우리는 세상에 투자 가능한 자산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에 가면 접하게 되는 예적금, 혹은 주식이나 펀드 정도다. 세계 금융 시장에서 주식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채권, 주식+채권 시장보다도 더 큰 시장 크기를 차지하는 파생상품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품들에 실제 투자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런 자산들이 전체적인 금융, 돈의 흐름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와 같은 지식들
MARKET의 단계는 그 투자 자산들의 역학 관계를 좌우하는 실제 현실에 대한 정보들이 있을 테다. 매일 마주하게 되는 경제 뉴스들의 영역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 혹은 무역 분쟁이나 전쟁 같은 같은 외재적인 사건들. 혹은 특정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M&A 이슈나 실적 발표와 같은 뉴스들이 포함될 수 있을 터다. 새로운 금융상품의 출시 소식 같은 단신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아마도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정보들은 대부분이 MARKET의 단계에 머문다. 그것들은 단편적이고 때론 소모적인 경우가 많다. 마치 두더쥐 게임을 하듯이 어떨 떄는 이런 자산이 수익률이 좋다고 했다가, 한 분기가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다른 자산을 추천하기도 한다.
돈 공부의 CORE는? 돈과의 관계 설정
사실 TOOL과 STRUCUTURE가 ‘공부’의 영역이라면 사실 ‘Mindset’는 그 공부를 하기 위한 방향성의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개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동시에 가장 돈 공부의 CORE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그리고 결국은 내가 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재테크로 엄청 돈을 벌고 싶다.”가 돈 공부의 목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삶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자원으로서의 ‘돈’”에 대해 알고 싶은 걸 수도 있다. 혹은 벌고 못 벌고는 떠나서 도대체 이 놈의 돈이라는 게 뭔가 궁금할 수도 있을 테다. ‘나는 뭐 돈 같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냥 잘 살 거야.’ 라는 생각을 지닌 이라면 돈공부 따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테다.
"돈이 더 생겨도 균형된 관계가 없으면 더 심하게 균형이 깨질 뿐입니다. 과소비하던 사람은 더 쓰고, 걱정하던 사람은 더 걱정하고, 안 쓰던 사람은 그저 더 쌓아놓고, 수도사는 돈 때문에 타락할까 걱정하죠. 복권 당첨자들을 보면 다음 2년 안에 인생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황당한 청혼도 받고, 모든 가족이 갑자기 뭔가 원하죠.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돈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돈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죠. 돈과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 아니까요." - <부자가 되는 심리학> 중 올리비아 멜란 미국 임상심리학자
저런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저 문구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관심 없는 척했지만 정말 관심 없지는 않았다. 그냥 쿨한 척 하지만 항상, 한 켠에는 갈급함이 있었다. 그러니까 돈에 대해서 항상 쿨 할 자신이 없으니, 이게 뭔지라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돈이 만들어지고 모이고 흐르고 벌게 되는 메커니즘, 즉 객관적 실체에 대해 아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 공부들은 대부분 그 영역에 쏠려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독히 유물론적인 돈의 세계에서도 결국은 돈(=부)와 관련된 ‘나의 생각’이라는 게 있어야 하고, 또 그것과의 관계 설정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금전적 안정은 인생의 균형이라는 맥락 안에서 가져야 한다.
돈과의 관계 맺음은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뜻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신의 삶과 돈에 대해 더 구체적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지출에 있어 균형을 잡지 못하는 건 돈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에 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30여년 동안 임상심리학자로 활동하며 돈과 관련된 갈등 문제를 대해 다루어 온 올리비아 멜란이의 말이 새삼 와 닿는 순간이었다.
돈이 곧 행복이 될 수는 없지만 인생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전적 안정을 가지는 게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저 돈이라는 녀석을 인격화해서 생각하다 보면 그렇다. 뭐랄까. 엄청 내가 짝사랑하는 대상인 거 같은데... 막상 손에 들어오면 잘도 써 버린다. '돈' 입장에서는 “이 자식, 뭐야?!” 싶을테다.
그제서야 드는 생각이 있다. 연애와 관련해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돈도 그렇지 않을까. 그 녀석에게 매달리다 보면 불행하다. 그 녀석을 얻어도 불행하다. 그 녀석과 함께든 아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았다. 아, 물론 함께 행복한 게 더 좋긴 하겠지만.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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