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착실히 살면 되는지 알았습니다
Prologue
그냥 착실히 살면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차곡차곡 예적금 들고 그렇게 돈을 모으면 내 몸을 누일 집 한 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내 가족 정도는 건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어디 조금씩 기부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 정도는 사주고 베풀며 살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2억 정도 더 열심히 모으면 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집값은 그 2억을 모아보니 어느 새5억이, 10억이 올라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어디 가서 빚내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보려던 우리의 성실함은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집 한 채를 샀다던 누군가는 그새 아파트 가격이 앞에 1자가 하나 더 붙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슨 주식을 사서 몇 배를 벌었다는 얘기를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암호화폐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막차를 타서 큰 돈을 잃었다는 이들 사이로, 큰 돈을 벌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표표히 떠났다는 이들의 이야기가 무협의 전설처럼 들려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때면 알게 모르게 어떤 열패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성실히 살아온 지난 삶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은 자괴감과 함께 말이죠. 아닌 척하지만, 그들이 부럽고 나는 왜 그런 것들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샀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무한 루프를 돌곤 합니다
고민을 ‘제대로’ 해보려 합니다
언젠가 직장 생활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쓴 적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된 어느 날 아침,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란 인간, 참 일관성이 있구나.’ 그러게요. 10년 넘게 한결같이,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가 가기 싫더라는 거죠.
그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접하기에 심상히 대하는 것들, 너무 일상적으로 접하기에, 고민은 항상 하지만 정작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것들. 그래서 평생 동안 신경 쓰고, 고민을 하면서도 그냥 1차원적인 고민만 하다가 마는 것들이 많다는 걸.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회사는 늘 다니기 싫었고, 돈은 늘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언제부턴가 서걱거리는 무릎은 좀 안 아프면 좋겠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일상을 촘촘히 치고 들어오더라도 우리는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익숙해질 만한 정도의 불편함이니까요. 무릎이 시린 거지, 암에 걸린 건 아니니까. 정작 절박할 만큼 그것들이 어딘가를 후려치고 들어오지 않으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을 넘어서니 ‘돈’이라는 녀석이 처음으로 뒷통수를 후려칩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전세만 전전하게 될 거 같다는 불안감. 나중에는 전세도 못 구해서 월세만 마련해야 하다 노후 대책 같은 건 생각도 못하겠구나 싶은 두려움.. 그제서야 ‘돈’이라는 녀석이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투자와 재테크와 관련해 느낀 자괴감과 후회는 어쩌면 당연할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돈을 쓰고, 투자를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깊이 있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쓰고, 저축하고, 주식도 사보고… 뭐 이런 것들을 안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냥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인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니까요.
막상 공부를 해보려고 하니 매일매일 들려오는 경제와 금융의 뉴스들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들인데, 너무 생소한 어휘들과 너무 다양한 의견들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들조차 외면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단순히 ‘어려운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제와 금융의 현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프레임을 머리 속에 채워 두지 못하면, 결국 그 수 많은 경제 뉴스들이 단편적인 소식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그 사이의 행간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걸 말이죠.
이 책은 그것들을 이해해보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었습니다.
부의 도약을 꿈꾸며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겪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은행에 가만히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가 10~20%씩 붙던 고도성장의 시기. 그래서 돈을 열심히 모으기만 하면 알아서 불어나던 시절이 말이죠. 하지만, 2020년 대한민국의 기준금리는 0.5%입니다. 이제 돈이 알아서 불어나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우리 경제도 어느덧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니까요.
한 때 잘 나가던 브랜드나 기업들이 종종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바뀐 세월에 맞춰 새로운 마인드셋을 구축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해서 우리는 원치 않더라도 어떤 도약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부모님 세대의 성공방정식이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돈을 모으고 불리던 그 길이 우리 앞에는 뚝 끊어져 있습니다. 맞은 편에 조금 더 높은 곳에서부터 길이 이어져 있긴 하지만, 그 간극은 적지 않습니다. 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다리를 툭툭 털어 스트레칭이라도 한 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하체의 근력을 키우고, 그 계곡을 뛰어넘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21세기에 소위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공부하는 과정 중에서, 일상인으로써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할 투자에 대한 시선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금융, 혹은 투자에 대해 공부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저 투자에 대한 마인드를 새롭게 세우고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제 삶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 같은 이들, 금융이라는 것이 마냥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어떤 도약을 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서 말이죠.
경제의 프레임워크를 최대한 단순화하였습니다. 경제와 금융은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경우의 수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헷갈립니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금융 초보라고 하면 알아둬야 할 개념들, 금융 시장의 플레이어들의 속성과 우리가 거래하게 되는 자산의 특징들을 툭툭 크게 다루었습니다. 각각의 것들이 경제라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그리고 초보자라면 알아 둬야 할 것들에 대해서만 말이요.
개념 위주! 되도록 수식과 차트를 배제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이 경제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복잡한 수식, 통계표와 차트들을 보다가 지레 질리는 경우가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간 사람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수학의 정석’에서 분수 챕터도 제대로 안 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투자를 잘해보겠다고 갑자기 공분산과 시그마, 로그를 공부한다고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그냥 개념만 잘 알고 넘어가도, 그 큰 줄기만 잘 이해해도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입니다.
머니 라이프 밸런스를 고민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투자 철학과 투자이론, 그리고 다양한 방법론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점매수 고점매도’를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주식은 그저 ‘바이 앤 홀드(Buy & Hold:사서 보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차트를 보며 기술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기업의 내재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다 맞는 말인 거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섭렵하고 공부하다가 한평생이 갈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돈을 벌고 싶지만 주식 호가창만 바라보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 또한 건강한 삶을 아닐 것입니다. 확률론적으로 보자면 회사 모니터를 그만큼 열심히 들여다봤을 때의 연봉 상승분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워라밸’이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그런데 똑같이 돈을 버는 일인데 투자 공부를 하느라 한평생 공부를 하고 조사를 하고 밤을 샌다면 그게 투잡을 뛰는 거랑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차라리 투잡을 뛰면 따박따박 돈이라도 들어오지 투자라는 건 오히려 손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투자와 관련해서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머니-라이프 밸런스(Money-Life balance)’.
우리는 흔히 투자에 대해 들어가는 것이 돈(원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가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멘탈이 털리든. 투자에 들어가는 리소스는 돈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또한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소중하고도 한정된 ‘자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일종의 ‘신경쓰임 대비 수익율’일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마냥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더 나은 수익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투자자는 더 열심히 생각하고 초과근무를 한다고 더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모든 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엄격한 훈련법을 훈련하고 따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수익이 따라올 것이다.”
미국의 헤지펀드 바우포스트(Baupost) 설립자이자 가치투자자로 유명한 세스 클라먼(Seth. A. Clarman)은 말은 그래서 체계적인 방법론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투자는 제대로 씨를 뿌리고, 그 뒤로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고, 어쩌면 그런 투자만이 일상을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삶과 공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행히 투자라는 것은 제대로 된 방법론으로 꾸준히 하면, 알아서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를 시작할 때 갖춰야 할 마인드셋과 익혀야 할 투자법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간단한 움직임들을 잘하다 보면 어느새 어려운 동작이 됩니다. 맨몸을 잘 못 쓰는데, 어려운 운동도구들을 잘 다룰 수는 없습니다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투자란 결국 ‘돈’이라는 것을 가지고 하게 되는 일종의 자본주의적인 ‘수행법’이 아닐까 하는. 시장이 던져주는 탐욕과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에 대한 결과들이 쌓여 나의 수익률이 되어주니까요. 어쩌면 투자란 ‘돈’을 매개로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익률’이란 것은 결국 그 관계 맺음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먼저 제안을 주고 꼼꼼한 피드백으로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해준 원앤원북스 편집부, 금융의 문외한에게 ‘금융’이라는 세상을 접할 기회를 주신 리치앤코 한승표 대표님, 조금이라도 더 쉽고 재미있게 금융 콘텐츠들을 만들고 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푼푼(www.punpun.co.kr)의 에디터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긴 집필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 준 민금채 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앎의 격차가 삶의 격차가 되지 않는 시대를 꿈꾸며,
이 글을 시작해봅니다.
박정선 올림
이 글은 정보 제공용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와 제도는 작성 시점 기준이고, 투자 판단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용약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