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 돈. 그 놈의 돈.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내가 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처음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속 열대 사바나의 하이에나를 관찰하듯 나를 떠올려보니 이것은 꽤나 혼란스럽다.
가만히 보면 뭔가 꽤나 아끼고 살려고 아득바득 노력하기 하는 거 같긴 하다. 커피 쿠폰은 꼬박꼬박 모은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모아 여행도 가고. 이통사 포인트를 연말에 다 못쓰면 가슴에 한이 맺힌다. 그런데 이렇게 알뜰한 척 굴지만, 어떤 날은 마치 폭식을 하듯 쇼핑을 한다. 50% 세일, 역시즌 특가 같은 단어를 마주치면 동공이 흔들린다.카드는 이미 지갑 밖에 나와 있다. 소비라는 면에서 이런 극단을 오가고 있지만, 사실 돈이라는 것 자체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그리 다르지 않은 거 같았다.
결국 돈에 대한 내 마음은 아래의 세 개의 문장으로 정리가 되었다.
돈을 좋아하는가? 그렇다.
그런데 돈을 밝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짠돌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써야 할 때는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고 버는 거 아닌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항상 연봉을 올리고 싶었다. 뭐 그건 꼭 돈의 문제를 떠나, 직장인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해서였겠지만. 예적금이든 펀드든 주식이든 이것저것 기웃거려 본 걸 보면,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은 분명히 내 안에 있다. 그러니, 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또 주변의 경조사나 누군가가 힘들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면 아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써야할 때는 쓰고 살고 싶다.
그런데 또 막상 누군가와 돈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뭔가 면구하다. 내가 당당히 받아야 할 돈인 경우에도, 때로는 상대가 억지를 쓰는 것일 때도 그렇다. 돈을 '밝힌다'는 것은 어딘가 죄스럽고, 그것은 탐욕스럽다고 느껴진다. 대체 왜 이런 마인드를 탑재하게 된 것일까.
왜 이렇게 된 것인가?
그러니까 왜 돈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기도 하다. 일종의 유형화가 가능할 거 같은데, 저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라면 한번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보자.
1) 그렇게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부모님의 모습은 그랬다.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를 찾아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찾아 예적금을 드는 것 말고는 따로 재테크라는 걸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근검절약하고,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이왕 물건을 살 거면 제대로 된 걸 사서 오래오래 아껴 쓰고, 무엇 하나 허투루 쓰지 말라고, 그렇게 배웠다. 밥상머리에서 배운 교육도 그랬다. 주식 같은 건 일확천금 노리는 이들이나 하는 거고, 집이나 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정당한 노동없이 생기는 불로소득이라 어딘가 온당치 못한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말들을 부모님께서 입 밖으로 내어 한 것은 아니어도 어딘가 그런 분위기였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해도 나라의 경제가 고성장하는 시절이라 10%넘는 고금리여서 괜찮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살지는 못해도, 남들 부럽지 않게는 살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당시에는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지금과 달리 금융에 대해 깊이 있게 몰라도 괜찮았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역시나 금융과 재테크에 대해 꽤나 무관심하고 무지하기도 했었다.
2) 자본주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음.
그렇다. 애매한 반골인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어도,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도는 읽었던 청년시절이 있었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資本主義)라니… ‘재물(재물 자 資)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한 글자만 다른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떠올려 보자 ‘사람이 근본이 되는 사상’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재물이 근본이 되는 사상이라니… 아니 그런 것에 ‘이즘’따위를 붙이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이것은 무슨 서구의 해괴한 귀신들이 만든 것인가. 쯔쯔쯧…
아니 어디, 바야흐로 동방예의지국에서 말이야, 버럭버럭!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는 공자의 말이 귀에 들려오지 않는가. 아니 동방예의지국 같은 헛소리는 집어치우더라도 그렇다. 이것이야 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하던 맘몬이 아닌가.
3) 안분지족하자.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잖아요?!
자본주의에서 제대로 된 자본이 없는 사람 – 그러니까 ‘돈이 돈을 벌어다주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 - 은 돈을 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시간을 들인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8시간, 주 5일을 열심히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월급이라는 게 매달 한 번씩 꽂히는 것이다. 결국은 인생에서 가장 한정된 리소스인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결국 삶의 행복이라는 게
내가 가진 것 / 나의 욕망
이라는 산술식이라면 가진 것을 늘릴 수 없으면 분모인 욕망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돈’을 위한 변명
뭐 저런 이유들를 나열했지만, 그냥 돈 밝히는 건 어딘가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냥 자신의 이익을 바득바득 따지는 건 어딘가 없어 보인다. 조금 손해보는 게 낫다. N빵을 해도 그냥 얼마 더 보내줘야 속이 편하고, 남에게 5천원을 빌려도 당장 안 갚으면 괜히 스스로가 찝찝해서 못 견딘다.
알게 모르게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만드는 건 또 있었다. 재벌가의 이혼이나 좀 살던 지인이 가족 간에 상속 분쟁이라도 일으키는 걸 보면 '그 놈의 돈 없어도, 속 편히 사는 게 낫다.'고 혼자말을 한다. 복권 당첨이 된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돈을 다 날리고서 망했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돈이 때로는 복이 아니고 저주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기도 한다.
흔히 떠오르는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한번 떠올려봤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부자들은 뭔가 부정한 방법을 돈을 모았을 것이다.
돈이 많은 이들은 탐욕적이고 인색하다.
인간의 탐욕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다
등등
하지만, 이것들을 하나 둘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뭘 사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솔직히 택배 아저씨 젤 기다리잖아요.)
이왕이면 돈이 없어서 생기는 불행보다는 돈이 많아서 생기는 불행을 겪고 싶지 않은가?
돈이 많아봤던 적도 없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부자들은 뭔가 부정한 방법을 돈을 모았을 것이다.
정말 부자들이 다 그런가?
설사 지금까지의 부자들이 그랬다고, 앞으로의 부자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돈의 잘못인가? 돈을 그렇게 모은 사람들의 잘못이지.
돈이 많은 이들은 탐욕적이고 인색하다.
근데 말이다. 빌게이츠가 대충 기부를 해도 내가 죽을동 살동 기부하는 것보다 어마무시하게 많을 거다.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하려면 돈이 많을 수록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괴물이 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또 미련한 일이 아닌가?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돈 많은 부자들은 사고를 안치니 어차피 모르고 사는 게 아닐까. 사고친 부자들의 이야기만 들려오다 보니 부자들은 다 이상하다고 여기는 거 아닐까?
인간의 탐욕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건 인간 탐욕의 문제지 돈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쓰다 보니 더 그렇다. 의외로 막상 알고 보면 ‘돈’이란 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돈이 무슨 죄이겠는가, 그것을 모으려는 이들의 탐욕이 죄지.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죄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를 지은 놈인 잘못인 거지.”
사실 청빈하게 살 자신은 없습니다만…
저 모든 생각들은 다 돈을 신포도로 만들고 싶었던 돈 없는 나의 자기합리화였을지도 모르겠다. 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객관적인 물체일 뿐이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 그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때로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를 탐욕에 사로잡히게도 하는 것일 터다. 물론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칼’이라는 것은 요리를 할 때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칼’의 위험성은 A4용지 같은 것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뭐 A4 용지도 입에 틀어넣으면 질식사 시킬 수도 있겠지. 돈도 그런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지만, 막상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 가는데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런 양날의 칼 같은 것.
돈에 눈이 먼 탐욕적인 삶의 대척점에 우리는 종종 청빈한 삶을 둔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성인의 삶에 가까운 것. 문제는 그것은 성인이라 가능한 것이자 우리 같은 필부들은 섵불리 ‘탐내어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같은 분들과 더불이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인 교사로 불리우는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청빈함을 추구하는 마음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소유를 포기한다고 그것만으로 자동적으로 에고(ego)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에고는 그 즉시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동일화될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물질적 소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한 위대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영적이라는 정신적인 자기 이미지에서 정체성을 찾을 것이다. 모든 소유를 버렸지만 억만장자보다 더 큰 에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의 동일화를 벗어던지면 에고는 재빨리 다른 것을 찾아낸다. 결국 에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인가가 있는 한, 그 무엇과 동일화되든 궁극적으로는 상관하지 않는다. 소비 문명을 비판하거나 사유재산에 반대하는 것도 소유와의 동일화를 대신하는 또 다른 생각 형태, 또 다른 정신적 입장이다. 그 동일화를 통해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게 만들 수 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게 만드는 것은 에고 지배적인 마음의 주된 방식 중 하나이며, 무의식의 주된 형태이다. 다시 말해 에고의 내용물은 변할 수 있지만, 에고를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마음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중, 에크하르트 톨레
그렇다. "청빈함에 대한 과시 조차도 때로는 과도한 에고의 작용"일 수 있다. "돈에 집착하는 너 따위보다 내가 나아."라는 이상한 우월의식을 가진다면 사실 우리는 또 다른 탐욕에 사로잡힌 걸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어떻게 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질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왕이면 "나는 돈도 많은데, 그 돈에 집착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돕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초연한 척하는 것은 가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매번 괜찮은 척 했지만, 어쩌면 한 순간도 괜찮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산 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도 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는 거창한 유물론적 시각을 떠나서라도, 하다 못해 회사에서 업무를 해도 내가 여유가 있어야 누군가의 일을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게 된다.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그나마 남을 조금이라도 더 살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돈이 우리에게 노력의 열매를 향유하는 데 가장 큰 선택의 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화폐소득의 유한성으로 상대적 빈곤과 이에 따른 제약을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제약의 상징인 돈을 혐오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힘이 느껴지게 하는 매개물을 그 원인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돈은 사람이 발명한 것 중 가장 큰 자유이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by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중
어쩌면 돈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견해는 저런 오류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돈에 관해서는 ‘츤데레’였던 것이다. 돈이 싫은 것도 아니면 츤츤거렸다. 그러니 돈이 붙을 리가 없다. 좋다고 해도 붙기 힘들 판에, 그러고 있었으니 될 일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은 그런 것이다. 40대의 금융 츤데레가 그 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돈이라는 녀석을 하나 둘 알아가며 서로를 이해(?)해가는 한 편의 로코는… 이상하니까 로드 무비 정도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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