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도 사야, 당첨이 된다
14. 로또도 사야, 당첨이 된다
앞에서 마치 내가 엄청난 혜안이 있어서 뚝딱 내 ‘무지의 지도’를 만들어 낸 것처럼 썼지만, 그렇지 않다. 스스로의 무식함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여정도 꽤나 길었다. 그 여정의 시작을 위해서 일단 서점을 가보았다. 평소에는 잘 가보지 않던 쪽을 향했다. 금융, 경제, 재테크 등등. 시중의 경제 및 금융 책들을 돌아보면 대충 카테고리들이 보였다.
1. 학구적 서적 +투자론
그러니까 일종의 논문에 가깝다. <21세기 자본>, 고상한 학자들이 그래서 내가 돈을 버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괜히 들고 있으면 있어보이는 책들이다.
2. 경제 에세이 + 시장 전망
<앞으로 3년 후 경제 전쟁> , <금리의 미래> 등등등 트렌드를 진단하고 시장을 진단하거나 혹은 일종의 미래학. 어디 아파트가 좋다거나, 지금은 암호화폐를 투자하라거나. 금리나 환율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차근 차근 소개해주는 책들. 사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3. 재테크 방법론 (+ 자기계발류)
“나는 OOO로 O억 벌었다” 부류의 책이다. 재테크로 돈을 모은 사람들의 알뜰살뜰한 저축이나 열심히 재테크해서 돈 번 이야기.
1번, 2번은 그렇다 치고 3번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다. 재테크 자기계발 서적은 특수한 케이스를 일반화하면서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냥 대세 상승기에 관심을 가졌고, 그 짧은 기간에 성공을 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서브프라임 이후에는 아무 주식이나 샀어도 실패할 확률보다는 성공할 확률이 더 많았고, 2012년 즈음에 아파트를 샀다면 역시나 매한 가지일 것이다.
나심 탈레브의 책 제목을 빌자면 ‘행운에 속지 말라’라는 말에 들어 맞는 케이스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어쩌면 그냥 한 번 운이 좋았을 뿐인데, 그것을 실력인 양 우리에게 떠벌리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흥칫뿡이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너란 존재는?
그러나 이제 공부를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읽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나도 OO해서 OO억 벌었다. 건물이 O채다.” 뭐 이런저런 책들도 한 스무 권 즈음 읽고 나면 저절로 이런 말을 나왔다
“와아… 다들 진짜 열심히 사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뭐랄까. 그런 느낌이다. 꼭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니라, 다른 걸 했어도 그 정도로 노력했으면 어지간히 성공했을 거 같은 느낌이다. 사업이든 뭐든. 부동산 투자로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 천지에 안 가본 곳이 없는 거 같고, 서울시내 아파트 정도는 다 시세를 꿰고 있고, 이런 저런 연구도 해서 나름 자신만의 공식(?)이라거나 지표라거나 인덱스라거나 그런 걸 만들어 낸다. 나름 시장에 대한 분석도 하고 싸이클도 고민하고. 주식은 또 말해 뭐할까. 주식 투자 책을 보자면 다들 매일 주식 차트 100종목씩 프린트해서 각도기로 재어가면서 사는 거 같은 느낌이다. 나는 우리 회사 재무제표도 한 번 본 적 없는데(사실 가계부도 안 쓰지 않는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찾아 읽고, 공시를 줄줄이 읊어댄다.
그들이 말하는 투자방법이나 투자철학이 옳다거나, ‘현자의 돌’에 비견할 만한 투자 비법이 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있다고 해도 걸 판단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리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찾아가는 과정들에 담긴 노력들은 리스펙트할 만한 것이었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의 책<오리지널스>에 소개되면서 꽤 유명해진 연구 결과가 있다. 경제학자 마이클 하우스먼(Michael Housman)이 고객상담을 하는 직원들 사이의 재직 기간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조사하다가, 인터넷 웹브라우저 종류와 생산성 사이에 일종에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브라우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익스플로러나 사파리 사용자들보다 재직 기간이 15% 정도 더 길고, 결근하는 확률도 19% 정도 낮고, 판매실적이나 고객만족도 등 모든 면에서 앞서 더 놓은 생산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크롬이랑 파이어폭스가 익스플로러나 사파리보다 훨씬 더 기능이 뛰어나서?’는 물론 아니다. 익스플로러는 윈도OS에 사파리는 맥OS에 기본 내장되어 있는 웹브라우저인 반면 크롬과 파이어폭스는 사용자가 직접 설치해야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언가 소소한 것이라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개선하고자 하는 자세, 그런 문제 해결 능력과 의지의 차이가 재직 기간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무시하던 재테크 자기계발류의 서적들을 앞에 두고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따위가 뭐라고 ‘그것들을 무시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 기록들은 하나하나 자본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나름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인데 말이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을 거추장스럽게 했던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공부하고 연구하였으며,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해결과정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란 인간은…
그러니까 나란 인간은 어땠는가 돌아보게 된다.
1.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적어도 재테크나 금융, 경제와 관련해서는..
2. 요행을 바란다.
그러고도 막연히 뭔가 잘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3. 남이 좋다고 하니까 산다.
그리고 확신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내내 쫄린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게으름이었다. 동시에 드는 생각. 그냥 어영부영 했는데 성공했다. 이런 건 없는 거 같다. 아니다 왜 없나. 있는 거도 같다. 주변에 보면 무슨 주식 샀는데 몇 배가 올랐고, 누군가는 사놓은 아파트가 처음 샀을 때보다 앞에 1자가 하나 더 붙었고, 판교에는 소싯적에비트코인으로 회사 때려치운 놈도 수두룩 하다던데.
다시 또 억울함의 회로가 돈다. 그런데 또 아닌 거 같다. 운이 좋아서 얻어걸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운은 뭐 그냥 얻어걸리나. 주식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처음에 마이너스로 갔다고 본전이 되고 나면 손이 근질근질거린다. 홀짝 게임을 하는데 홀수에만 걸어놓고 10판 정도 그냥 쭈욱 가는 배포 정도는 있어야 주식 한 종목으로 몇 배 먹을 수 있는 거다. 그 변동성을 버티는 멘탈과 확신은 보통 일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서브프라임 채권의 부실을 미리 눈치채고 반대로 베팅한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빅 쇼트>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보통의 확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집 한 채 사는 것도 그렇다. 한평생 살면서 사게 되는 것 중에 제일 비싼 게 집이다. 그러니 있는 재산 다 끌어모으고, 그것도 부족해서 안방이랑 거실 정도는 은행 돈으로 사야 한다. 일반인에게는 그 또한 보통의 결단이 아니다. 전세 계약서 하나 쓰면서도 집주인이 이상한 사람인지 아닌지 사기가 아닌지 신경 쓰게 되는데, 그런 큰 물건을 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 나이 되도록 집 한 채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부동산 찾아가거나, 집 알아보고 둘러보고 대출 상담 받고 뭐 그런 당연한 구매 과정조차 귀찮아 했던 탓도 적지 않다. 어쩌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한 번 갔다가 그 긴 줄을 보고서 생각했다. 아니 줄 서기 싫어서 맛집도 잘 안 가는데 이거 보려고 이렇게 줄을 서야 하나?
그렇다. 누군가는 그 줄을 섰고, 나는 안 섰다. 살까말까 하다가 그냥 지나쳐버린 아파트들이 떠오른다. 안 샀는데 올라버린 그 수많은 주식 종목들이 스쳐간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좋은 종목을 알았다는 것, 어디 아파트가 괜찮다는 걸 알았다는 건 사실 아무 소용도 없다. 그건 그냥 그런 거다. 어느 날 머리 속에 떠오른 좋은 사업 아이디어와 별 차이가 없다. 나중에 그 종목과 매물이 많이 올랐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그건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누가 떼돈을 벌었다고 아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론은 결국 실행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다. 누군가는 그 리스크를 감당했고, 그 귀찮음을 감당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다 못해 HTS의 '매수' 버튼 하나를 누르는 소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꽤 큰 차이다
그렇다. 사지도 않은 로또가 당첨이 될 일은 없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초로의 어르신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숫자들이 가득하다. 저 연배에 무슨 수학 문제를 푸시나 하고 봤더니, 로또 번호를 찾을 수 있다는 일종의 수열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저런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로또가 당첨이 되어도 내가 아니라 그 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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