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리스크
‘나’라는 리스크
좋은 정보, 좋은 금융 상품, 좋은 투자처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글쎄다. 잘 모르겠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장비가 있고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장비도 서툰 사람이 사용하면 망가지기만 하고, 그냥 평범한 장비도 금손이 사용하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시장 탓, 자산 탓을 하기 전에 먼저 내 탓도 좀 해야 한다. 그렇다. 투자의 대가들이 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시장과 싸워 이기기 이전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를 말아먹은 우리의 심리를 보자.
심리 리스크 01_ 내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오판한다. 그리고 수익률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를 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펀드 상품 하나를 사려고 해도 투자 성향 체크라는 걸 하라고 한다. 연봉은 얼마나 되고, 앞으로 수입은 늘어날지 줄어들지, 금융 자산이 전체 자산의 몇%인지, 손실은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지 등등을 묻고 나서는 투자 적합 등급을 알려준다. 아래의 5단계로 나뉘어 있다.
공격투자형/ 적극투자형 / 위험중립형 /안정추구형/안정형
이 등급에 맞춰서 구매할 수 있는 펀드의 위험도도 정해진다.
그런데 사실 안정추구형이나 안정형 정도의 성향이면 가입할 수 있는 게 채권혼합형 혹은 채권형 펀드 정도다. 수익률을 스윽 보고 나면 괜히 좀 심심하다. 해외주식형 펀드의 화끈함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괜히 투자 성향의 답을 바꿔서 적는다. 그게 아니면 굳이 ‘투자성향 불일치 동의’를 해가면서까지 위험등급의 펀드에 가입하게 된다.(그래, 내가 그런다.) 시장이 좋을 때야 아무거나 다 좋으니까 괜찮은데, 시장이 안 좋으면 펀드라고 해도 -30%가 넘는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그제서야 손실이 적은 낮은 위험등급의 펀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라도 폭락한 펀드를 팔아치우고 다른 걸로 갈아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장기적으로 우상향할거라고, 또 언젠가는 시장은 다시 오를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그렇게 된다. 수익률에 눈이 멀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에 몸을 담으면, 어떻게든 맘고생을 할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본인 감당할 수 있는 변동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 분명 그런 이들도 있다. 시장이 폭락하기 전에 잘 빼거나, 아니면 시장이 회복할 것을 믿고 과감하게 베팅을 회복기에 수익을 만들어내는 이들. 하지만, 그게 ‘나’라는 확신은 없다.
요식행위처럼 보이던 투자 성향 체크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거기에 맞는 상품에서부터 투자를 시작하는 건 그래서 필요하다. 꼭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변동성을 인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내 몸의 상태를 알아야 나에게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가 무엇인지 알아야 나에게 맞는 스타일의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질 수 밖에 없다.
심리 리스크 02_ 답은 정해져 있어, 자기합리화
인간은 본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인 경우가 더 많다. 정치 이슈를 떠올려보자. 이미 자신의 의견은 정해져 있으면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의 증거들만 모아서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려 들 뿐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종종 진실이나 사실은 무의미해지고, 스스로 만들어낸 진실(?)만 존재할 뿐이다. 정치 이슈는 그래도 논쟁 한 번 하고 얼굴 한 번 붉히고 끝날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제 이슈는 그렇지 않다.
어떤 종목이나 자산을 사고 싶으면, 어느새 이미 이것들을 사야할 논리들이 머리 속에서 가득하다. 내가 산 주식의 가격이 떨어졌다고 하자. “오호? 생각보다 더 빠졌네. 그래 이렇게 저평가 되어 있을 때 사서 묵혀 두면 돈이 되겠지.”라고 합리화한다. 만약에 오르면? “오호? 역시 추세가 살아있네. 이런 잘 나가는 종목을 골라서 모멘텀 투자를 해야 수익이 생기지.”라고 합리화한다.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시장 상황이나 다른 자료들을 그저 나의 마음을 확신 시켜기 위한 핑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순간들에 우리는 리스크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을 하거나, 과도하게 용감해진다. 그리고 나서는 요행을 바란다. 금융시장이 무너져 내릴 거 같은 폭락장 속에서도 내가 산 주식만은 왠지 오르거나 버틸 거라고. 얘는 이런 호재가 있고, 쟤는 자사주 매입을 할 거고, 얘는 지금 임상3상에 들어갈 거리고.
심리의 리스크03_ ‘탐욕’
결국 가장 큰 리스크는 내 안의 ‘탐욕’이다. 남들이 수익을 내는 것을 보면 눈이 뒤집혀서 쫓아가려고 한다. 내가 산 종목은 지지부진한데, 살까말까 고민했던 종목이 상한가라도 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걸 통제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투자하면 안 될 것’들부터 골라 내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의 투자 실력은 ‘뭘 안하는 게 차라리 재테크’인 경우가 많다.
펀드매니저이자 작가인 찰스 엘리스 Charlse Ellis는 1972년 <금융분석저널>에 프로 투자를 아마추어 테니스에 비유하는 '패자의 게임The Loser's Game'이라는 기사를 썼다. 프로들의 경기와 달리 아마추어들의 경기에서는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실수를 적게 하느냐’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에서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워드 막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투자자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즉 이례적인 수익을 달성하는 것과 손실을 회피하는 것 중에서 나는 후자를 더 신뢰한다.”
“우리는 '하락 종목을 피한다면 상승 종목은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워렌 버핏은 이것을 야구에 비유한다. 다만 이 야구에는 스트라이크와 볼이 따로 없다. 시장이라는 투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공을 던진다. 투자자인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칠 필요가 없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큰 것 한방을 터뜨리면 된다고 했다. 여섯 달 아니 2년 동안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다 보면 투수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공을 던질 때가 있다고.
2020년 봄이 오기 전, 2019년 11월에는 그런 기사가 나왔다. “워런 버핏, 역대 최대 현금만 149조.” 미국주식 시장이 10년째 상승하는데, 빚내서 아무거나 사둬도 주구장창 전고점을 돌파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던 시절에도, 그는 자기의 말처럼 마음에 드는 공이 올 때까지 집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원칙이라도 좋으니 일단 세우자
흔히 시장을 탐욕과 공포 사이에서 오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초에 탐욕에 빠지 않았다면 공포에 휘둘릴 일은 별로 없다. 물론 말은 쉽다. 지지 않는 싸움을 하라는 말도 참 뻔하다. 누가 지고 싶어서 지는가. 그렇다. 지고 싶어서 지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있다. 이기고 싶어서 욕심을 내다가 지는 것. 그렇다. 그런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역시나 말은 쉽다.
책을 백날 읽고, 유튜브 강의를 아무리 봐도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머리로 듣고 이해했다고 투자가 되는 게 아니다. 레이 달리오는 2018년에 자신의 인생을 다룬 책 한 권을 냈다. 책 제목이 <원칙(Principles)>이었다. 세상에서 투자로 돈을 제일 번 사람이 쓴 책이니 다 읽고 나면 뭐라도 돈 버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700페이지가 넘는 꾸역꾸역 다 읽어봤다. 물론 그 책 어디에도 돈을 버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책 제목처럼 그가 살아온 삶의 원칙들이 담겨 있다. 자신의 인생,일,조직 관리 등에 관해서 하나하나 세우고, 혹여라도 상충한 듯 보일 수 있는 원칙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그것들을 정교하게 지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가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좋은 원칙을 세우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뭐가 되었던 ‘원칙’이라는 걸 세워보는 행위 자체이다. 또, 그게 뭐가 되었던 지켜보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짜두고서 1년에 한 번만 계좌를 보겠다’도 좋고, ‘주가가 20일 이동평균선 상향 교차하면 매수하고, 5일 이동평균선 하향 교차하면 매도한다.’같은 기본적인 트레이딩 원칙이어도 좋다. 그게 아니면 하루종일 ‘주식창을 보고 있기 싫으니 9시에 사서 9시 30분에 팔겠다.’라는 특이한 원칙이라도 괜찮다.
요는
‘원칙’이라는 걸 세워본다.
원칙을 지키는 것을 습관화한다.
우리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예외를 만들고 허용한다. 그러니 뭐가 되었든 일단 원칙을 만들고, 지켜보자. 원칙이라는 여름방학 스케줄 같은 것이다. 일단 정해 놓으면 그게 뭐가 되었던 지키기가 싫어진다. 그걸 하나하나 세우고 하나하나 해 해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거대한 투자의 바다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믿어서는 안 된다. 시장의 탐욕과 광기, 그리고 공포는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 것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에 필요한 것은 오디세우스의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자신을 돛대에 밧줄로 묶어두는 지혜.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을 놓지 않지만, 동시에 자신이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자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어책이다.
그러니 투자의 바다 위로 항해를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그 거대한 시장 안에서 스스로의 보잘 것 없음과 시장의 광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묶어 두는 원칙이라는 돛대일 것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돛대라도 상관없다. 스스로를 묶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면, 그렇게 원칙을 쌓아간다면 돛대는 튼튼해질 것이고 매듭은 꼼꼼해질 것이다.
아래 문구로 이 장을 마감하려 한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Protect me from what I want)”
by 제니 홀저(Jenny Holtzer), 미국의 개념주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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