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나와 세상 사이의 관계 맺기
Intro _투자, 나와 세상 사이의 관계 맺기
금융 시장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다양한 금융공학적인 이론과 논리들을 보고 있자면 일종의 법칙들이 있어서, 천재들은 떼돈을 벌 거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영국의 조폐국장까지 한 뉴턴도 버블로 한 획을 그은 ‘사우스시 컴퍼니(Southsea Company)’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려 먹다시피한 건 꽤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천재들이 만든 헤지펀드의 수익율은 또 어떨까요?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 이 두 명의 경제학자들은 옵션의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블랙-숄즈 공식’을 개발한 공로로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1994년부터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 (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라는 헤지펀드에 파트너로 참가하였습니다. 이 펀드는 정교한 금융공식을 활용한 채권차익거래를 통해 1998년까지 해마다 20~40%의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를 계기를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그들의 투자는 무려 100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몰락하게 됩니다. ‘큰 국가의 국채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그들의 전제가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죠.
머리가 좋다고 꼭 투자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마냥 열심히 한다고 또 잘하는 것도 아닌 거 같습니다. 매일 주식창을 열심히 들여보는 이보다, 사두고 계좌 비밀번호를 까먹고 몇 년 후에 봤더니 10배가 되어 있더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걸 보면 말이죠.
투자의 세계는 이렇듯 이성과 감정의 싸움터이기도 합니다. 엄밀한 수학적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 금융공학적인 사고로 정교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AI가 기계적인 프로그램 매매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엄밀한 사고보다도 개개인의 감정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그 모든 골조들을 뒤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투자의 세계는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똑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것들이 꽤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 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3개의 세계가 평행 우주처럼 함께 공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그 3개의 세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팩트의 세계 : 사실, 정보, 통계
2) 판단의 세계 : 팩트에 대해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
3) 심리의 세계 : 그 판단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
팩트의 세계는 우리가 만나는 각종 정보의 세계입니다. 어느 회사의 2분기 실적이 어땠고, 작년 한 해 세계의 경제성장률이 어땠는지는 팩트의 세계입니다. 펀더멘탈에 대해서 알려주는 숱한 지표들도 팩트의 세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사실을 찾기 위해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유가증권을 열심히 분석하고, 앞으로 성장산업은 무엇인지,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판단의 세계는 저 팩트들에 대해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입니다. 소위 ‘전망’이라는 것이 반영됩니다.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기업이 있다고 해보죠. 그렇다고 주식이 오를지 내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최대 실적을 이어갈 거 같다고 시장이 전망하면 오르고, 지금이 마지막 불꽃놀이라고 판단하면 내릴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도 이미 충분히 주가에 반영되었다고 판단하면 실적 발표 후에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리의 세계는 더 종잡기 어렵습니다. 판단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이성의 영역이지만, 실제 행동은 심리 혹은 감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PER100이 넘어서 분명히 고평가가 된 주식이라도 사람들이 너나없이 사면 계속해서 가격이 오릅니다. 실물 경기가 너무 엉망인데 주식 시장이 날아가면, 불안해하면서도 쉽게 발을 빼지 못합니다. 코스피가 1700보다 더 내려가서 분명히 저평가 구간인데도 왠지 더 빠질 거 같아서 갖고 있던 주식을 팔기도 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실,정보를 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수익을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보와 사실들에 대한 판단을 시장에서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계좌 속의 수익률은 극과 극을 달리고 합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금융시장도 일종의 담론의 시장이 아닐까 하구요. 그래서 시장을 좌우하는 것은 일종의 스토리나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구요. 온갖 지표와 통계, 그리고 펀더멘털은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로 소환될 뿐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가끔은 그 스토리 자체에 탐닉하여 그 증거들조차 새롭게 해석하거나 아예 새로운 지표들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나스닥기술주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합리화하기 위해 PDR(Price-Dream Ratio)이라는 지표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기업이 고평가되었는지를 보여주는 PER(Price-Earning Ratio 주가수익비율)을 따라 나온 말인데, 기업의 꿈과 비전조차도 가격에 반영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빠른 성장성을 기대하고 미리 주가에 다 반영을 했다는 이야기겠죠.
시장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모든 호재들도 악재로 보이고, 시장이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모든 호재들이 악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너무 사고 싶을 때를 떠올려 보죠. 그걸 사기 위해 온갖 합리화를 할 떄가 있지 않나요? 왠지 요즘 들어 스마트폰이 좀 버벅거리는 거 같고, 자동차 브레이크가 버벅거리는 거 같고, 가지고 다니던 백의 가죽이 좀 벗겨진 거 같고. 그렇습니다. 주식이나 금융 상품을 살 때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사고 싶을 때는 어떻게든 사야할 이유를 찾고, 팔아야 할 때는 어떻게든 팔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 그런 경우의 투자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이때까지는 여러 기초 자산이나 금융상품이 지니고 있는 각종 리스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서 있어서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나’, 즉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투자란 결국 ‘나’와 ‘자산’ 사이의 관계 맺기이자, ‘돈’을 매개로 내가 세계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 투자의 가장 큰 적인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고민해 봐야 할 때입니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단언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해서 우리가 투자를 하기에 앞서 제일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어떤 겸허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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