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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Fin

[투자를 생각하다] 버블의 역사

푼푼금융 에세이스트2026.11.01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수(CPI)가 8.6%를 기록하여 인플레이션 공포가 주식 시장을 강타했다. ‘설마 더 떨어지겠어.’라고 생각했던 종목들이 설마 그렇게 더 떨어진다. 코스피는 하루에 100포인트가 빠지고, 나스닥은 고점대비 3분의 1이 날아갔다. 코인 시장에서도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나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현명해진다. 투자의 역사에는 언제나 그렇게 인간의 탐욕이 배어 있다. 지난 역사를 둘러보면 이런 일들은 허다했다. 하지만,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또 매번 반복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는 매번 돌아오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기에 우리는 같은 탐욕에 빠져 항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금융 또한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18세기, ‘국채’가 낳은 광기

세계 최초의 버블로 손꼽히는 건 특이하게도 유가 증권이 아닌 튤립이었다. 17세기 유럽에 몰아쳤던 튤립 광풍 시기에는 튤립은 하나에 3000길더에 이르렀는데, 3000 길더면 당시 유복한 상인의 1년 치 수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1637년 튤립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100분의 1의 가격으로 떨어졌다.

18세기에는 ‘국채’가 버블의 중심에 섰다. 당시의 유럽 각국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끊임없이 벌였고, 전비를 모집하기 위한 국채를 대량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하도 발행하다 보니 이 국채를 사줄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주식회사를 하나 세워 그 회사가 국채를 인수하고, 그 회사는 인수한 국채만큼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대신 주식을 비싸게 팔 수 있도록 그 주식회사에 무역 독점권 등 다양한 특권을 부여하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국채보다 비싸게 주식을 팔기만 하면 수익이 나는 장사였다. 영국에서는 1711년에 사우스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 프랑스에서는 1719년에 미시시피 컴퍼니 (Mississippi Company)가 그렇게 차례대로 생겨난다. 이 회사의 주식은 당시로선 엄청난 성장주로 여겨지면서,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미시시피 컴퍼니는 3천 리브르였던 주가가 1만 2500리브르까지, 사우스시 컴퍼니는 10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까지 단기간에 급상승했다. 하지만 그 뒤 1년이 못 되어 두 회사의 주가는 10분의 1토막이 나게 된다. 아무리 무역 독점권 등의 특혜를 받더라도, 실제로 주가를 뒤받쳐줄 만한 실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투자자들의 투매 때문이었다. 그리고 ‘버블(Bubble)’이라는 단어가 이때 처음 생겨났다.

1980년대, 엔고와 금리 인하가 일으킨 일본 경제의 버블

멀리 갈 것도 없이 옆 나라 일본의 8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해 1달러에 242엔이었던 엔화 환율이 1987년에는 120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엔화 절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고환율로 인한 수출기업들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금리 인하를 정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시중에 풀린 자금들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버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니케이지수는 1985년 1만 2천에서 1990년에는 4만에 가깝게 상승하였고, 부동산의 경우 그 자산총액이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4배나 가격이 뛰었다. 하지만 이후 니케이 지수는 5분의 토막이 났고,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도 3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닷컴 버블의 시작요 근래 연일 폭락하는 나스닥은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 1995년 8월 9일, 인터넷 브라우저 업체인 넷스케이프(Netscape)는 IPO에 성공한다. 최초의 웹브라우저를 만든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거래 첫날에만 주가가 세배가 치솟았다. 특이한 점은 넷스케이프는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그전까지는 기업이 상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기반으로 가치 평가를 받은 후에 상장을 했었다. 이제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만 보여줘도 투자가 들어오고, 창업자들은 기업의 실질적인 성과와 별개로 IPO를 통해 벼락부자가 되는 케이스가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이렇게 시작된 닷컴 버블은 2000년까지 이어지면서, 1995년 1월에는 840대에 머물던 나스닥 지수가 2000년 3월에는 5000을 넘어섰다. 그러나 닷컴 기업들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나스닥지수는 1년 후인 2001년에는 2000선, 2002년 후에는 1300선까지 급락하게 된다.

비이성적 도취를 경게하라

유명한 경제학자 두 명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비이성적 과열은 투기적 버블의 심리적 기초를 이룬다. 나는 투기적 버블을 가격 상승 뉴스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가면서 투자자의 열광을 자극하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가격상승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확대생산함으로써 더욱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투자자들은 투자의 실제가치에 의문을 가져도 다른 이의 성공에 대한 부러움과 도박성을 띤 흥분을 느끼면 그것에 끌려든다.”

* 로버트 쉴러 , <비이성적 과열> 중

"도취감에 기여하는 것은 우리 시대나 과거에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두 가지 추가적인 요소들이다. 첫 번째 요소는 금융 기억의 극단적인 단기성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계의 재앙은 금방 잊힌다. 더 나아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똑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종종 젊고 늘 확신에 차 있는 신세대는 이 상황을 금융계와 더 크게는 경제계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발견인 양 생각한다."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

인간은 의외로 쉽게 잊는다. 그래서 쉽게 탐욕에 빠져 투자하고, 또 쉽게 공포에 빠져 투매한다. 사실, 그 시장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시장의 흐름과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는 않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래서 금융에서도 역사를 통해 지금의 시장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시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정보 제공용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와 제도는 작성 시점 기준이고, 투자 판단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용약관

푼푼금융 에세이스트

금리·물가·산업의 변화를 살피고, 제 관점에서 시장과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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