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삼국지가 아니다
인간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스토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사이의 빈 틈을 메워준다. 태초의 원시인은 하늘에서 왜 비가 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늘에 있는 여신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텔링은 주식 시장에서도 똑같이 이어진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기관,외국인, 개인투자자들이다. 우리는 주식 시장을 기관, 외국인, 그리고 개인 투자자라는 3 개의 주체가 만들어내는 한 편의 드라마로 풀어낸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항상 개인 투자자인 개미이다. 왜냐면 우리가 개미니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항상 ‘전지적 개미 시점’에서 서술된다. 개인은 불쌍한 언더독 이미지의 주인공이다. 국부를 탈취하려는 외국인의 매도세에 대항해 지수를 ‘방어’하고, 한편이라고 믿었던 기관이 뒤통수를 쳐도 그들은 분연히 일어선다. 주식 계좌가 마이너스의 피바다가 되어도, 개미들은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수많은 기사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 ‘겁에 질린 개미 던지자...외국인·기관, 기다린 듯 '쌍끌이 매수' * 외국인·기관 4조 매물 폭탄…'동학개미' 역대 2위 매수로 방어 * 연기금, 7개월만에 증시를 구하기 위해 등판
등등… 하지만 잊지 말자. 저 수많은 기사들은 클릭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것이지, 내 계좌 수익률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는 수익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시야가 필요하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게임을 하자
프레임은 종종 중요하다. 왠지 그렇게 적혀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기관, 외국인이라고 분류되어 있으니 그들이 마치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거 같은 환상을 갖게 된다. 한국에 투자한 전 세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합심해서 한국 시장을 탈취하려는 거 같고, 때로는 대한민국의 모든 자산운용사들이 개인을 털어먹기 위해서 작정을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계좌가 빵꾸가 나면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진다. 결국은 그게 외국인 아니면 기관이 된다. (그도 아니면 소위 말하는 ‘세력’이나 ‘주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학개미운동’과 같은 메타포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고가 내 계좌수익률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어떤 현상을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니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나와 연계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의외로 외국인과 기관은 ‘개미’에게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기관, 또 다른 외국인들과 싸우는 존재들이다. 주식시장은 사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을 개인들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 관료들도 ‘시장’ 자체를 뭉뚱그려 생각하기도 한다. 레이 달리오는 자신이 만난 유럽의 정책결정자들에 대해 자신의 저서 <원칙>에서 아래와 같이 얘기한다.
“그들(유럽의 정책결정자들)이 알고 있는 시장의 작동 원리는 경제학자들처럼 매우 단순했다. 예를 들면 유럽의 정책결정자들은 투자자들을 시장참여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들이 시장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다. 시장이 나빠졌을 때 그들은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장의 신뢰도와 상관없이 일부 특정 기관들은 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과 신용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요는 개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감정을 담아, 현실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 해석들이 정작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외국인이나 기관들은 그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의도를 부여하고 흔들릴 필요는 없다. 실제로 그들이 개인 투자자들을 털어먹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걸 알 수가 없고,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대응하기 힘들 수 있다. 좋은 점은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세운 원칙에 따라 게임을 하면 어지간한 풍파는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만 있다
시장에는 개인, 외국인, 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심플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시장을 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리아니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모든 거래에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있다. 즉, 낙관주의자(10분 동안만이라도)와 비관주의자가 있다. 이들은 한 주식을 하루 동안에도 몇 번이나 교환한다. 추세는, 낙관주의자가 주식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가 아니면 비관주의자가 주식을 파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앙드레 코스톨리아니 <실전투자강의> 중
낙관주의자는 주식을 사고 비관주의자는 주식을 판다. 흔히 매도자가 많아서 주가가 떨어지고 매수자가 많아서 주가가 오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 사실 매도자의 수와 매수자의 수는 똑같을 수 밖에 없다. 개인, 기관, 외국인의 일일 거래량을 더하명 결국 0이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누군가가 사려면 누군가는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시장에 낙관주의자가 더 많은지, 비관주의자가 더 많은지가 시장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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