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넘버] ‘숫자’가 기업은 아니다
‘비욘드 넘버’ 시리즈는 주식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종목 분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 기업의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기업이 지금 성장의 어떤 스테이지에 있는지를 볼까 합니다. 주식 시장의 소음을 벗어나, 가끔은 우리에게 좀 더 장기적인 시야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투자를 할 때, 우리는 종종 어떤 습관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똑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투자’라는 시각에 바라보게 되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DART에 올라오는 공시들을 빠짐없이 살펴보고 사업보고서를 꼼꼼이 뜯어보고, 관련 뉴스와 종목토론방을 찾아 헤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정작 그 회사의 홈페이지조차 한번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걸, 그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한 번 본 적도 없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우리의 투자는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이라는 두 가지의 거대한 분류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중에 무얼 써도 적어도 우리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더라는 거죠.
기본적 분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매출, 영업이익, PER, 유보율 등등 너무 않은 수치들 앞에서 길을 잃곤 하죠. 그 모든 수치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도 유용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도 무용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분석을 하겠다고 이평선과 캔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수급과 거래량을 체크하고 MCAD, RSI 등의 각종 보조 지표들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후행적이라는 기본적인 한계와 함께, 정말 고수가 아니라면 오히려 그 수많은 패턴과 파동 사이에서 길을 잃고 더 큰 손실을 맞이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몸무게, 키, 허리 둘레 등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체지방량이나 근육량, 혈압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맞출 수도 없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은 그 사람의 건강에 대한 어떤 정보를 추론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인과 관계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수치로 환산하려고 합니다. 그 수치들로기업을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 숫자들이 분명 그 기업에 대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다만, 그 숫자들이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으며, 그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게 된다는 게 문제겠죠.
아무리 확신이 있어도 고점 대비 70% 빠지면 멘탈이 흔들립니다. 이런 시기에는 기본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의 실적이 이전 분기나 연도에 비해 나빠진 경우가 많으니 이런 폭락이 근거가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기술적 차트를 놓고 보면 진작에 팔았어야죠. -70%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멘탈이 깨어지면 저 저점에서라도 손절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애써 잊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살펴보니 그 주식은 1년 반이 못 되어서 전고점의 2배, 고점의 7배를 넘어섭니다. 네, 작년부터 꾸준하게 핫한 엔비디아(NVIDIA)의 이야기입니다.
빅데이터와 AI의 시대가 올 거라는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런 변동성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기계적인 손절을 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장기적인 전망을 믿고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버티지 못한 거죠. 분명 매출과 이익은 줄었고, 그 주식은 거품이 낀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누구나 나름의 플랜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런 폭락장에서는 그런 계획은 일종의 지적 유희가 되어버립니다. 오히려 떠오르는 건 마이크 타이슨의 한 마디였죠.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face”. 그렇습니다. 누구나 얻어 처맞기 전에는 계획이 있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우리는 주식 시장에서 너무나 수시로 처맞아서 그나마 세운 계획들조차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너무 많죠.
그럼 무얼 놓쳤던 걸까요.
지금 이 기업은 어느 단계일까?
5년 전,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샀더라면 150% 정도의 수익률을 얻었을 겁니다. 당시에도 시총 1위였던 애플을 사서 가만히 있었더라면, 배당금을 제외하고서도 자산이 4배 정도 늘었을 겁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정작 그 정도의 수익율을 거두지 못한 이들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그 변동성을 감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마켓 타이밍을 잘 잡고, 트레이딩을 잘하는 분들이라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지수 상승률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하다면, 아니 지수는 상승하는데 내 계좌는 빨갛게 물들어 있다면 새삼스레 우리의 투자에는 무엇이 부족한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숫자는 종종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가끔은 숫자 이면에 담긴 것들이 있습니다.
재무제표는 현재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지금의 숫자보다도, 그러한 숫자가 나온 히스토리와 지금 그 기업이 성장에 있어서 어떤 단계에 있는지 또한 중요합니다. 똑같이 165cm의 키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초등학생이냐 다 큰 성인이냐에 따라 크다 작다의 기준이 달라질 겁니다.
누군가의 키와 몸무게를 안다고 해서 어떤 운동 선수의 기량을 안다고 할 수 없듯, PER과 PBR을 안다고 해서 어떤 기업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기업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고, 기업이 추구하는 성장 전략에 따라서도 매출이나 이익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이 그저 온라인 서점, 혹은 더 나아가서 온라인 마켓과 커머스 정도에서 사업 확장을 멈췄다면 어땠을까요? 이미 기업 성장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기반으로 배당을 주는 기업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빅테크로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EPS는 더 높은데도, PER은 더 낮아서 실제 주가는 지금보다 더 낮았을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숫자를 넘어서 그 기업이 처한 상황과 그 전략, 그 기업의 성격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식 투자를 한다는 것이 결국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의 지분을 사서, 그 성장의 결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면, 어쩌면 일봉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물론 분기별 실적 하나에 흔들리는 것조차도 어쩌면 짧은 시각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1년 간의 실적 조차도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훌륭한 선수라고 해도 감기가 걸리거나 작은 부상으로 성적이 난조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선수를 방출하는 것은 그리 훌륭한 팀 운영은 아닐 것입니다. 선수 생활을 하기에 무언가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며, 그런 선수는 재활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으로 추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엔비디아라는 선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고 있었더라면, 적절한 타이밍에 손절을 하진 못했더라도, 최저점에서 매도하여 큰 소실을 보고, 나중에 배가 아픈 일은 없었을 겁니다. 것이 주가, 매출, 이익 등 수치가 아니라 기업의 이야기를 살펴보려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기업의 스토리를 알면,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단계들에 대해서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고, 조금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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