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그만둬도 출금은 계속된다
은퇴 후 월급을 설계하라 · 2화

은퇴 준비의 첫 질문은 ‘얼마나 모았나’가 아니라 ‘다음 달 생활비가 어디서 나오나’예요.
퇴직한 뒤 첫 월요일 아침을 상상해볼게요. 알람이 울리지 않아요. 천천히 아침을 먹고, 사람이 적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요. 주말에 몰아서 하던 일을 평일에 해도 된다는 게 새삼스러워요. 처음에는 이렇게 서두르지 않는 하루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러다 휴대전화에 알림이 하나 떠요. 카드대금이 빠져나갔다는 알림이에요.
출근은 그만뒀는데, 출금은 계속돼요.

월급이 해주던 일
월급은 일한 대가이면서, 다음 달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돈이었어요. 이번 달에 많이 썼더라도 다음 월급날까지 버텨보자는 계산이 가능했죠. 그 계산이 늘 맞았던 건 아니어도, 적어도 다음 입금 날짜 하나는 알고 있었어요.
그 날짜가 사라지면 같은 지출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재직 중에는 다음 달 수입으로 메우던 돈을, 이제는 모아둔 자산에서 꺼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잔고가 줄어드는 걸 보며 ‘이렇게 계속 써도 되나’ 싶어져요. 당장 생활이 어려워서만은 아니에요. 그 잔고를 언제까지 써야 할지 가늠이 잘 안 돼서예요.
‘은퇴 후 월급’이란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에게는 정해진 월급날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도 일을 줄인 뒤의 질문은 비슷해요. 앞으로 들어올 돈으로 지금의 생활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연재에서 말하는 은퇴 후 월급은 일하는 양을 줄여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련하는 돈이에요. 연금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모아둔 자산에서 계획에 따라 꺼내 쓸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내가 쓰는 돈과 연결해봐야 해요. 계좌마다 잔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다음 달 생활비가 어떻게 채워지는지 알 수 없거든요.
자산 합계의 함정
노후에 얼마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속으로 재산을 더해보게 돼요. 집이 얼마쯤, 예금이 얼마, 연금계좌에도 조금. 그러다 다른 사람의 숫자를 만나면 갑자기 초라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합계에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돈이 섞여 있어요.

살고 있는 집은 거주할 공간을 줘요. 예금은 정해진 조건 안에서 꺼내 쓸 돈이 되고, 연금은 가입한 제도와 계약에 따라 받을 시점과 방식이 정해져요. 모두 같은 숫자로 바꿔 더할 수는 있지만, 생활비로 쓰는 과정까지 같아지지는 않아요.
집값을 아는 것과 다음 달 식비를 마련하는 건 다른 계산이에요. 집을 활용해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는 있어요. 다만 그때는 계속 살 곳과 비용, 돈을 받을 조건까지 함께 봐야 해요.
자산 옆에 붙일 질문
저는 자산 목록 옆에 질문을 하나 더 붙여보자고 권해요.
이 돈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내 생활에 보탬이 될까?
얼마나 모았는지 아는 건 중요해요. 거기에 쓰는 시점과 방법을 더해야 비로소 내 계획이 돼요. 오래 뒤에 받을 돈으로 이번 달 부족액을 메울 수는 없고, 곧 쓸 돈을 꺼내기 어려운 곳에 두면 자산이 있으면서도 생활이 빠듯해질 수 있어요.
오늘 해볼 일
내 자산을 집·예금·연금처럼 성격별로 나눠 적기
자산마다 ‘언제부터 쓸 수 있나’를 옆에 적기
‘어떤 방식으로 생활비가 되나’(꺼내 쓰기, 매달 받기, 거주)를 적기
은퇴 후 다음 달 생활비가 어디서 나올지 한 줄로 써보기

얼마를 모았는지에 ‘언제, 어떻게 쓸지’를 더해야 비로소 내 계획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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