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현금 보유
푸른 것은 제주 앞바다만은 아니었다. 출렁이는 것도 제주 앞바다만은 아니었다. 작년 한해 붉게 타오르던 내 계좌는, 언제부터인가 마이너스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계좌 속의 붉은 숫자들은 마치 한 시절이 저무는 걸 알려주던 석양 같은 것이었을까.
모두의 계좌가 녹아내리는 시절이다. 몇 년간 플러스였던 계좌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주식이라는 건, 그냥 잠깐 한 순간 기분만 좋았던 거지 그냥 또 이번 턴에도 실패한 게 아닌가라는 소식.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로 금리의 시대, 현금은 쓰레기?
작년과 재작년 이맘 때를 떠올려 보자. 당시의 키워드는 FOMO였다. Fear of Missing Out. 하루 밤만 지나도 껑충껑충 오르는 주가를 바라보며, 돈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남들만큼 벌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이 시장에 가득했다. (기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탐욕이었지만.) 나스닥은 돈 복사기였고, 빅 테크 성장주는 그냥 사두기만 하면 영원히 오를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간의 박스권을 뛰어넘어 코스피가 3300을 터치하고 내려왔다.
모두가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고 했다. 제로 금리 시대에 예적금이나 가입하고 있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뭐라도 사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현금은 ‘기회비용’ 취급을 받으며 무시를 당했다.
고인플레이션의 시대, 여전히 현금은 쓰레기?
2022년 상반기 내내 주식 시장을 강타한 키워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하는 가운데도 현금은 또 무시를 당한다. 아니 미국의 물가지수가 7~8%가 오르는데, 아니 하다못해 회사 앞 순대국밥도 이천원이나 올랐는데, 기준 금리 조금 올랐다고 은행에 돈을 넣어둔단 말인가. 가만히 앉아서 돈이 녹아내리는 걸 보고 있는게 말이 되는가. 원자재 ETF라도, 탄소배출권 ETF라도, 부동산 리츠라도 좀 사두라고 또 입을 모아 말한다.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 그나마도 고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야금야금 녹아내려가는 거 서글픈 기분. 그런데 말이다. 매달 들어오는 작고 소중한 그 현금들이 그렇게까지 무가치할 리는 없지 않을까?
현금은 방파제다
재작년에는 코로나가 발생했고 생각보다 더 오래 이어졌다. 올해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뒤이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 무엇도 당시에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지 않았다. 예측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고 종종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은 없다.
아니다. 확실한 것이 있긴 하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그 무엇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예측이나 기대는 그런 불확실성에 의해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현금을 보유한다는 건 그 시간들에 대비할 수 있는 방파제이다. 언제나 문제는 시장이 아니다. 나의 포지션이다. 시장이 폭락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는 악재가 아니다. 내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아니 오히려 호재다. 산 가격에 살 수 있으니까. 현금 보유는 그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내가 산 자산이 하락하더라도 더 싼 가격에 매수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포커를 한다고 해보자. 판마다 자신의 판돈을 모두 거는 포커 플레이어는 없다. 자신의 패를 보며 베팅을 조절하고, 정말 확실한 기회가 왔을 때에만 판돈을 모두 건다. 그런데 모든 현금을 투자해서 주식이나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면 우리는 판마다 올인(All-In)을 외치는 무모한 플레이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포지션이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이제라도 현금 보유의 가치를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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